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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66

[창작시] 바라건대 ㅣ내가 나에게 돌아보면 어지러운 발자국 습관적인 종종걸음 쫓기듯 살아온 증거 미소가 어색한 거울 속 얼굴 길 잃은 아이처럼 감추지 못한 낙심한 얼굴 조급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뭐가 무엇을 그리 다그치는가 너무 늦지 않았다면 바라건대 덕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받기보다 줄 수 있길 쓸모 있는 지식보다 이로운 지혜를 지향하길 마음에 심지가 단단해서 떠밀리지 않고 굳건하길 보이지 않아도 존재함을 믿는 것처럼 화려한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여물기를 폭풍 속에도 잔잔한 깊은 바다처럼 마음이 깊고도 넓어지길 어디든 무엇이든 섞이고 변형되는 물처럼 말과 몸짓이 유연하고 너그럽길 주머니가 넉넉하기보다 분위기가 넉넉한 사람이고 싶다 예쁘지 않아도 시선을 사로잡아 끝내 잊지 못하는 사람이고 싶다 아무 때라도 하.. 2022. 12. 19.
[창작소설] 잃어버린 것 1 나는 지금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원인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사고 당시 기억이 도려낸 것처럼 소실되었고 전후 사정도 대부분 흐릿하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 강렬한 순간만은 생생하다. 자동차 경적소리와 고무 타는 냄새에 이어 몸이 붕 떠 날아간 찰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진공 상태가 된 채 시야가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바뀌더니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몇 분인지 아니면 몇 초였는지 시간이 흐르고 이마를 흠뻑 적시는 무언가를 닦아내려 했는데 팔을 들 수가 없어서 몹시 당황스러웠고 갑자기 불이 꺼지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음 순간 눈 떠보니 병원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며칠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긴급 수술 등으로 상처 난 몸을 회복하고 의식을 찾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을 건너 띈 상태였다. 현재 확실하게 아.. 2022. 12. 18.
[창작시]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인연인지 아닌지 포근하게 어루만지고 치열하게 부딪치고 숨 막히게 끌어안았다 차게 스쳐 지나가거나 머무르는 온기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어떤 이는 선이 닿아 인연이 되었고 어떤 이는 끈 떨어진 연처럼 멀어졌다 하나의 점으로 마침표가 되었다 아련한 기억이 되거나 애달픈 눈물이 되거나 생생한 각성제가 된다 놓쳐버린 아쉬움 되거나 끝나지 않는 악몽이 되거나 끝나지 않길 바라는 단꿈이 된다 환희 또는 실연의 밤을 지나야 안다 인연인지 아닌지 악연인지 아닌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되돌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해야 할 말 못 해 놓친 인연 하지 말아야 할 말해 떠난 인연 전하지 못한 진심 헤아리지 못한 마음 나도 내 맘 몰라 속절없는 한숨으로 지새운다 홀로 누운 어두.. 2022. 11. 16.
엄마의 겨울 외투ㅣ나눔의 행복 거리 곳곳에 눈이 쌓여있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외출 중이던 엄마는 집 근처 왕복 2차선 도로 앞에 겉옷도 없이 구걸하는 걸인에게 선뜻 본인의 겨울 외투를 벗어주었다고 한다. 집 근처이기에 집으로 되돌아가 다른 옷을 입고 나오면 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겉옷을 벗어주면 본인이 당장 추위에 노출되는 것이니까. 나라면 일단 다시 집에 들어가 걸인에게 줄 옷-안 입고 버린 셈 칠만한 것-을 따로 챙겨 와서 줄 지언정 그렇게 즉각적으로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줄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착하게 베풀며 살아온 천사표 엄마는 좋은 의미로 참 어른일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망설임 없이,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건 아무리 부자여도 쉽지 않다. 심지어 엄마는 본인이 못 .. 2022. 10. 30.
무기력한 A에게 찾아온 편안한 밤ㅣ악연으로 내몰린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인간이라서 사는 동안 한 번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그 속에서 다양한 갈등과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필연적으로 실망, 분노를 넘어 증오를 일으키는 대상에게 살의를 느껴본 경험도 있으리라. 원인이 무엇이든 그러한 화와 살의가 '나'로 향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타인'에게 향하면 '범죄'의 유혹을 넘어 동기가 되기도 한다. 분노하고 증오하는 대상에게 복수를 꿈꾸거나 속이 시원해질 만큼 앙갚음하는 상상을 안 해 본 사람 있을까.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 한 번이라도 서 본 사람이라면 단순히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는 사과와 반성만으론 성이 차지 않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받은 그대로 되갚아 주고 싶은 심정도 느껴봤으.. 2022. 10. 10.
상처입은 어린 아이ㅣ사랑의 매 엄마도 나이가 드셨는지 이따금 맥락없이 과거의 얘기를 들려주신다. 어떤 계기로 생각이 난 건지 알 수 없으나 별 일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가벼운 말투로 말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같아 도통 믿어지지 않지만 걸어서 왕복 4시간씩 통학했다던 전라도 깡시골에서 자란 엄마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개구쟁이 시절 이야기들이 참 재밌다. 얌전하고 단정한 처녀가 되길 바랬던 외할머니의 바람과 정반대였던 엄마는 겁없이 무전여행을 다니고 친구들과 사고치면 앞장 서기 일수인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이름 날렸던 일화들이 이야기보따리처럼 툭툭 튀어나온다. 개구진 어린 시절 내내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수시로 매질을 당하였는데 매번 잘 도망갔다가 걸려서 두 배로 맞았던 에피소드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그밖.. 2022. 9. 19.
[창작소설ㅣ단편] 선희 씨의 선택 선희 씨에게는 아주 예쁜 딸이 한 명 있다. 정말 뻔한 얘기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어여쁘다. 일찍 떠난 아빠를 닮아 흰 피부에 눈 코 입 오목조목 조화롭다. 특히 환하게 웃을 때면 긴 눈꼬리의 외까풀 눈이 사르르 감겨 웃는 이모티콘처럼 선만 남곤 했는데 보는 이도 절로 따라 웃게 만들었다. 더불어 움푹 패이는 볼우물이 볼수록 매력적인 아가씨다. 단정한 외모뿐 아니라 선하고 바른 언행에 주위의 칭찬이 자자해서 선희 씨에게 늘 자랑스러운 딸이다. 시내 번화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희 씨 집은 주택가여서 평소 조용하고 사건사고도 없는 평범한 작은 동네이다. 집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번화가가 있는데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선희 씨가 데리러 나가곤 했다. 집 근처까지 .. 2022. 9. 8.
어리석은 과거의 나 바로보기:마이너스에서 제로 그리고 다시 시작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으슬으슬 서늘함에 재채기가 절로 나오는 가을이 왔다.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톡 알림에서 봤다며 생일 축하 인사 메시지였다. 아마도 서류상 생일이 자동으로 반영되어 톡 친구 알림에서 확인한 듯하다. 한동안 소원해진 친구였으나 반가움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팬데믹 등 여러 가지 일들로 마지막 통화했던 2019년 이후 각자 큰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식 날까지 잡아놨다 파혼했고 친구는 아이를 낳아 벌써 4살이라고 했다. 장녀와 막내아들을 가진 오누이의 엄마가 됐다더라. 신기했다. 내가 비혼을 외치며 룰루랄라 놀면서 보내는 동안, 친구는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했다니.. 같은 나이 .. 2022. 8. 26.
청소의 힘ㅣ시드니 셰어하우스의 변화 •저장강박증 •시드니 셰어하우스 •환경의 변화와 삶의 질 청소, 출처: Pexels 무료 이미지 초봄에 이사하면서 다양한 잡동사니들을 버려야 했다. 꽤 넓은 창고와 집안 구석구석 빼곡히 채워져 있던 각종 물건들 대부분은 빈 플라스틱 병, 이미 용도를 다했거나 재활용도 할 수 없는 부속품, 오래된 전자기기처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데 버리지 못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오래되었으나 박물관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을 만큼 희소하지도 않고 심지어 망가져 작동조차 되지 않는 잡다한 소모품 등이 넘쳐났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물건인지 그 출처와 용도도 가물가물한 물건들 중 태반이 낡고 해지고 볼품없어 아무리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해봐도 내 눈엔 쓰레기였다. 이사 온 집이 신축이라 깨끗하고 공간 배치가 .. 2022. 7. 14.
떠올리기만 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대해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다 보니 반복해서 자주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도 그중 하나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양하겠지만 내 경우 주요 관심사인 '행복'에 대해 자꾸 스스로 묻는다. 딱히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어중간한 무덤덤한 상태이거나 '그저 그런'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애매한 때가 더 많다. 혹은 평상심이라 할 수 있는 평온함일 수도. 다만 혹시라도 지금 불행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우울한 기분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내리막길에 가속이 붙을 수 있으니 방치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금, 나는 행복해 질까?' 11살 초등학생 조카가 학교 생활, 친구 관계, 공부와 학원 스트레스로 사는.. 2022.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