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인간이라서 사는 동안 한 번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그 속에서 다양한 갈등과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필연적으로 실망, 분노를 넘어 증오를 일으키는 대상에게 살의를 느껴본 경험도 있으리라.
원인이 무엇이든 그러한 화와 살의가 '나'로 향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타인'에게 향하면 '범죄'의 유혹을 넘어 동기가 되기도 한다.
분노하고 증오하는 대상에게 복수를 꿈꾸거나 속이 시원해질 만큼 앙갚음하는 상상을 안 해 본 사람 있을까.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 한 번이라도 서 본 사람이라면 단순히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는 사과와 반성만으론 성이 차지 않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받은 그대로 되갚아 주고 싶은 심정도 느껴봤으리라. 처절하게 응징하는 상상을 하고 사이다를 들이켠 듯 통쾌하다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없다면 정말 부처의 마음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복 받은 사람일 듯.)
범죄 영화, 스릴러 영화에서 '인과응보'는 관객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다. 때문에 악인에 대한 처절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응징, 나아가 목숨까지 빼앗는 영화가 수많은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주며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닐까?
여기, 미혼에 홀어머니를 둔 A가 있다. 그녀 또한 인생 중반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다양한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하고 피해를 입거나 분노한 경험이 적지 않다.
그녀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시기심으로 곤경에 빠뜨리게 하는 등 피해를 끼치는 주변인, 친구의 탈을 쓴 잘못된 인연, 재활용도 불가능한 몹쓸 인성의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욕심 많은 친척, 못 잡아먹어 안달인 시어머니 같은 내부의 적, 사사건건 부딪히며 스트레스 유발하는 직장 동료, 부당하게 위력을 행사하는 상사나 기상천외한 갑질을 일삼는 무뢰배들 기타 등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부닥치는 분노 유발자들, 악연으로 남은 인생의 악인들 말이다.
분노 경험은 얼마간 그녀의 일상을 스트레스 상태에 빠뜨렸다. 신발 속 돌멩이처럼 끊임없이 신경 쓰이게 하거나 깊은 밤 잠 못 들게 만들고 등교거부 학생처럼 회사 가기 싫게 만들기도 했다.
당장 미칠 거 같아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고 잊히는 것처럼 대부분 '시간이 약'이 되어 저절로 치유되거나 희석되거나 봉합되곤 했다. 기억의 소실, 즉 망각이라는 처방을 통해 때론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단 한 사람, 인생 처음으로 극렬한 살의를 느꼈던 사람이 있었다.
오랜 시간 그녀와 가족들을 괴롭혔던 사기꾼 한 명만큼은 끝까지 용서도 망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입은 피해와 분노, 억울함은 잊히긴커녕 흐릿해지지조차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분노는 활화산처럼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A가 사회 초년생에서 막 벗어나 아직 덜 여문 20대 중반을 넘어가던 시기였다. A의 홀어머니는 친구의 친구였던 어떤 남자를 소개로 알게 된다. 그가 새로 시작한 사업에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자, 마침 이직을 위해 쉬고 있던 딸에게 입사를 권유하였고 그렇게 A는 임시직으로 그 남자 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당시 A의 엄마와 그 남자는 친분이 깊지 않은 지인일 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단 몇 개월 만에 엄마를 설득해 딸인 A의 인감을 몰래 가져가 A 명의로 중고차를 2대나 멋대로 할부 계약을 맺게 된다.
당시 A는 명의 도용당한 사실도 몰랐지만 더 충격적인 건 그들의 관계가 깊어진 것조차 나중에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남자는 A 명의의 중고차 2대에 대한 할부 차값과 각종 세금, 보험에 심지어 범칙금까지 연체하고 체납하였고 엄청난 빚으로 불어나 고스란히 A에게 전가했다. 억울하게 빚을 떠안아야 했던 A에게 더 큰 상처가 된 건 그 일로 엄마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렸다는 점이다.
그 사기꾼은 A 엄마의 인생을 송두리째 엉망으로 만들었다.
남편과 사별 후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내며 강인하고 책임감 강하며 의리와 신의로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던 A 엄마는 잘못된 인연으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사기꾼은 A 엄마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 친인척 돈까지 모조리 자신의 사업, 사기 행각에 이용해 먹은 것으로 모자라 엄마를 옆에 두고 다른 여자의 돈을 사기치고 이용한 파렴치한이었다. 끝내 더 이상 빼먹을 것 없이 다 빼앗겨 온갖 치욕 속에 거지꼴로 나뒹굴던 껍데기뿐인 A 엄마마저 버린 천하에 몹쓸 개잡놈이었다.
아침시간에 주부들을 위해 방영되는 막장드라마도 못 따라올 쓰레기 같은 이야기다.
A가 처음 명의도용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고 당황했지만 엄마의 중재와 남자의 변제 약속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의 관계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믿는 거 외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어리석고 순수했으니까. A도 엄마도.
차일피일 미뤄지던 약속은 결국 사업을 말아먹은 뒤 모든 빚을 A에게 떠넘기고 먹튀 한 뒤에도 그 어떤 조치도 못 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변명하는 남자의 거짓말조차 분별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어이없게 그 남자의 사기 행각에 놀아났다. 그 남자에게 모녀는 너무나 손쉬운 호구였으리라.
솔직히 담보처럼 엄마가 사이에 있었기에 A는 그 어떤 강경 조치도 실행해볼 수 없었다.
차 할부 값, 책임보험, 심지어 자잘한 비용조차 한 번도 내지 않고 고스란히 빚으로 쌓이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당연히 각종 차와 관련 세금이나 벌금까지 모두 체납한 상태였다.
집으로 날아오는 의심스러운 서류들에 대해 엄마와 그 남자가 해결하겠다는 호언장담만 믿고 A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변명의 여지없이 어리석고 안일했다.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A는 억울해도 본인 명의의 빛을 해결해보고자, 뒤늦게 변호사와 상담했으나 엄마와 남자를 함께 고소 고발해야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차마 엄마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채무를 짊어질 수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20대 후반부터 조금씩 성실하게 갚아나갔다. 숨겨진 미션 수행하듯 여기저기 불시에 날아오는 다양한 빚을 지우는데 10년 넘게 걸렸다. 빚이라면 지긋지긋했다.
A는 내내 생각했다.
처음엔 사기꾼에게 설득 당해 딸의 인감을 몰래 가져가 대출 등 사기 범죄를 눈감아준 엄마에게 화가 났다. 바보같이 이용당해 자식도 버리고 남자를 택한 엄마가 밉고 치 떨리게 싫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용하고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고 헌신짝처럼 버린 그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를 벌주고 싶었다. 상상 속에선 영화 속 장면처럼 깡패라도 사서 죽기 직전까지 때려주고 싶었다.
A가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 어리석은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죽고 싶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을 신체적 고통으로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비록 백 분의 일도 못 미칠 터이지만.
그런 사기 범죄나 계속 저지르고 다니는 악질 쓰레기는 죽여 없애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 남자를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응징했으나, 현실은 무력했다. 빚에 허덕이고 울분을 풀 길 없어 한 없이 허무할 뿐이었다.
결국 버림받은 엄마는 만신창이가 되어 혼자가 되었고 끊어졌던 모녀 지간, 가족과의 교류도 어느 정도 봉합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때의 상처와 경제적 피해는 여전히 A와 가족들에게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A 엄마는 자식과 동생들, 부모에게 헌신했던 훌륭한 어른의 위치에서 '금치산자'에 가까운 팔푼이, 모지리로 강등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사기꾼과 완전히 인연이 끊긴 걸 확인한 뒤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A에게 커다란 흉터와 환상통을 남긴 상처는 여전하다. 억울해도 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니 괜찮았다. 다만 A를 빚에 허덕이게 만들고 울분의 희생자로 만든 엄마가 미운만큼,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 엄마가 안타깝고 불쌍해서 속시원히 미워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용서하지도 못하는 모순과 양가감정이 A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다.
원망할 대상이 밉지만 짠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갈 곳 없는 원망과 분노를 해소할 길이 없었다. 해결할 수 없는 양가감정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타격과 충격파가 되어 오래도록 반복적으로 A를 괴롭혔다.
힘들고 괴로워 죽고 싶다가도 억울해서 죽이고 싶은 그 사기꾼에게 맺힌 한을 풀지 못한 게 가장 분했다. 진심 어린 사과나 반성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인간실격이라고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질러 볼 걸.
어이없게도 단 한 번도 그 남자에게 직접 정당하게 화내고 따져보지 못했다. 늘 엄마의 뒤에서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히 엄마를 방패막이 삼고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바보 같은 A와 엄마만 속을 끓였다.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나서 울분이 쌓이고 쌓이다 맺혀서 결국 A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속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은 비어있지만 또 끓어오르거나 차갑게 공허함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온기를 가진 마음까지도 차갑고 건조한 사막처럼 메말라 모든 것이 폐허 속에 부서지게 만들기도 했다.
폐허 속에서 A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생명 준 엄마조차 못 믿을 세상에 맨 몸으로 내쳐졌다고. 나쁜 생각은 A를 상처 주고 실의에 빠져 슬프게 하고 억울하게 만들어 끝내 '왜 살아야 하냐?'라고 근원적인 존재 이유까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 마음속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마음을 죽이고 나아가 주변의 온기조차 모두 멀리 쫓아내고 혼자 고독하게 사그라들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진짜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으나 무수한 밤과 어두운 새벽에 유혹을 느끼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못된 상상 속에 잠기길 여러 번이었다.
벼랑 끝에 서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불행의 끝, 절벽 낭떠러지까지 내몰린 뒤에야 두려움이 몰려왔다. 매서운 찬 바람과 위협적인 파도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죽는 건 한 순간이라는 무서운 깨달음과 끝없는 허탈함이 도리어 삶에 대한 강렬한 미련을 느끼게 하고 살고 싶은 의지가 됐다.
어쩌면 A는 무력했던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원한 맺힌 울분을 해소할 그 어떤 조치조차 시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수는커녕 시원하게 분노를 표현해보지도 못했다. 실컷 욕하고 원망하는 것조차 못할 만큼 무기력했다.
애꿎은 엄마만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 채 A는 뻔히 자멸의 길임을 알면서 피폐해져 갈 뿐이었다. 본인의 일임에도 남 탓하며 외면하다가 결단을 내리지도 못하고 그저 나약해서 도망치기 급급했다.
A는 그런 자신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났던 것이다. 나약하고 어리석고 무기력한 자신이 가장 많이 미웠던 것 같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A는 들끓는 감정을 잠재우고 차분히 복기할 수 있었다. 아픔과 고통으로 외면했던 과오와 패착을 돌아봤다.
습관이었던 일기 쓰기가 제삼자처럼 내면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직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책을 읽고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삶의 끈을 붙잡고 악착같이 살려고 애썼다. 시간이 약이 되어 아픈 기억과 상처를 지우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흐르자 절대 아물지 않을 것 같던 고통과 괴로움과 상처에도 딱지가 생겼다. 그리고 열심히 빚을 갚아 채무에서 벗어난 A는 이제 어른스럽고 너그러워졌다. 조금쯤 현명해졌는지 모른다.
그저 '돈'을 잃은 것일 뿐이라고, 피해를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게 됐다. A와 가족의 인생에서 떨어져 나간 사기꾼에 대해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받는 것조차 아깝고 쓸모없는 감정 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허울 좋은 위안이 아니다.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평화를 찾았다.
이제야 비로소 눈멀어 보지 못했던 것들, 그냥 지나쳐 버린 것들에 시선과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과 불운으로 불행했던 엄마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게 됐다.
누구보다 가장 어리석고 무기력했던 A 자신에게도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게 됐다. 드디어 편안한 밤이 찾아왔다.
중년이 된 A의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정면으로 맞닥뜨려 보았다. 마마걸이었던 시절, 사랑에 눈먼 엄마에게 등 떠밀려 둥지에서 갑자기 쫓겨난 일이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엄마를 잃고 모든 믿고 의지하는 것들로부터 신뢰를 앗아간 실망감과 맨 땅에 버려진 듯한 상실감에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차라리 고독을 선택했던 순간들, 일밖에 모르던 시간들,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비빌 언덕이 사라진 허망함과 부표 같은 뜨내기 생활이 내내 이어졌다.
A의 마음은 늘 섬 같았다.
혼자였고 마음 줄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믿었다가 또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예 그 싹을 잘라버렸다. 그렇게 혼자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버텨나갈 뿐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기억과 더불어 얽힌 감정도 흐려졌다. 쉼 없이 일하고 조금씩 꾸준히 변제해나가니 차츰 빚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경험이 쌓이고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좀 더 밝은 눈을 갖게 되었다. 나이가 들고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보니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뛸 듯이 가벼워졌다.
다행인 것은, 아직도 '희망'이 A에게 남아있다는 거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희망'.
가진 것 없고 변변한 직장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비혼인 A는 가난하지만 우아하고 싶다. 현재 완전한 혼자여도 여전히 건강하고 정신도 멀쩡해 선하고 바른 마음도 망가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타고난 낙천성과 더불어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해낼 것이라는 의지도 여전하다.
어떤 아픔과 어려움이 닥쳐도 A 안에 진짜 '나'는 조금도 손상받지도 해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살아서 생생하다. 그러하기에 과거는 떠나보내고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희망' 하나만은 지켜냈기에, 행복해지기 위해 자유롭게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상처는 아문다. 아프고 힘든 기억은 그대로이나 희미해지고 더 좋은 기억과 경험으로 채색되거나 대체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을 자기답게 살아가다 보면 대기만성형인 삶, 인생이 나날이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만큼 그렇게 만들어갈 것이다.
A는 악연으로 내몰린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내일을 희망한다.
'별+사색 > 에세이*시*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작시]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0) | 2022.11.16 |
---|---|
엄마의 겨울 외투ㅣ가진건 쥐뿔도 없지만 행복한 이유 (0) | 2022.10.30 |
상처입은 어린 아이ㅣ사랑의 매 (0) | 2022.09.19 |
[창작소설ㅣ단편] 선희 씨의 선택 (0) | 2022.09.08 |
어리석은 과거의 나 바로보기:마이너스에서 제로 그리고 다시 시작 (0) | 2022.08.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