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색/에세이*시*소설66 불안에 대하여 | 끝없이 엄습해 오는 막연한 불안 갑자기, 전조증상 없이 시작되는, 변덕스러운 날씨 같은 불안이 있다. 아열대 기후 스콜성 소나기처럼 갑자기 찾아와 흠뻑 적시고 처참한 몰골만 남겨두고 사라진다. 소나기가 그치면 젖은 거리가 순식간에 말라 비 온 흔적조차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오직 흠뻑 젖은 옷과 축축함만 남겨 당혹스러울 뿐이다. 나한테 그런 불안이 있다. 쏟아지는 비에 꼼짝없이 젖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속수무책(束手無策), 손 쓸 새 없이 당해버리는 불안과 초조 말이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걱정 없이 태평한 성격 덕분에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쉽게 잊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남기려고 하는 나에게도 지금 이야기하려는 불안은 정말 예외적이고 특이한 경우다. 그건 막연한 사고에 대한 불안이다. 다리.. 2025. 8. 7. 내가 꿈꾸는 종말 | 나답게 있는 그대로 생애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한 건 초등학교 2학년이던 9살 여름 즈음이었다. 하교 길에 집을 코 앞에 두고, 양방향 2차로를 건너던 중 서행하던 자동차에 치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가족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던 차였고 실려가는 내내 쇼크로 정신 못 차리고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난다. 병원입구에서 응급 침상에 눕혀져 옮겨지면서 그때서야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몸이 자동차에 치여 붕 떠올라 찻길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에 비해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났다. 커다란 책가방 덕분에 뇌진탕도 없었다. 운이 좋았다. 이후 5학년 때 우연히 보게 된 석가모니 만화책을 통해 다시금 '죽음'이라는 필멸(必滅)에 대한 강렬한 두려움을 느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 2025. 7. 12. 행복이 뭐 별 건가? | 다정한 위로 집으로 가는 길, 집이 보이는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안도감이란. 금요일 저녁 퇴근길이 신나는 건, 내일 아침 알람도 끄고 내키는 대로 늦잠을 자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일주일치 피로가 가시기 때문이다. 주말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기대와 흥분이 뒤섞인 설렘은 말이 필요 없는 자양강장제다. 퇴근길 안부를 묻는 전화통화는 마음의 빈 공간까지 채워준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소리로만 전해지는 소중한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익숙하고 편안한 안정감이 찾아온다. 짧은 말 몇 마디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포근하고 충만한 안도감이 든다. 오늘도 수고했다, 밥은 먹었느냐, 아픈 덴 없냐, 마음 다치거나 힘든 일 없었느냐 등등.애정 어린 잔소리마저 다정한 위로다.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를 담아 넌지시 건네는 .. 2025. 6. 14. 눈물이 주르륵 | 울보라서 그래 눈물샘이 고장 난 게 분명하다! 툭하면 눈물 터지는 울보가 되어버렸다. 감정조절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긴 걸까? 때 아닌 눈물바람에 난처하고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젠장! 건조하리만치 뻔한 보통의 하루, 무심코 TV를 보다가 출연자 사연에 공감해 따라 우는 건 부지기수. 짧은 영상 클립 속 감동 장면에서 울컥하고 연달아 떠오른 과거 어느 기억에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친 '아하!' 깨닫는 순간에도 먹먹한 마음에 또 눈물이 찔끔. 심지어 잠들기 전 떠오른 상념들이 밀물처럼 떠밀려 올 때엔 파도에 휩쓸리듯 복잡한 심상에 빠져 베갯잇을 적실 정도로 한참 동안 울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감정이 널을 뛰는 건지, 생애 전환기 호르몬의 문제인지 원인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눈물이 많아졌고 빈도도 늘.. 2025. 6. 1. 버티기: 퇴사하고 싶은 3, 6, 9개월 차 직장인에게 최근 들어 자꾸 '탈출'을 꿈꾼다.일이 힘든 거야 옆집 초등학생도 안다. 말하면 입만 아프지. 입사 6개월 차 신입 딱지가 반쯤 벗겨졌으나 여전히 낯선 환경(조직문화와 사람들)과 업무에 적응하려고 웬만하면 그러려니 순응하고 있다. 취업한 것만으로 감사하고 벅찬 마음에 처음 몇 달은 새롭고 낯선 곳, 업무에 적응하느라 적당한 긴장과 기대에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시간이 흐르고 일이 익숙해질 즈음 취업성공의 기쁨은 익숙한 일상에 매몰되어 사라졌다. 대신 알게 모르게 누적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한계치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건 사람들과 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정서적 부대낌이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다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2024. 10. 26. 매우 짧고 힘나는 한 문장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더 할 말이 필요한가? 이 말을 듣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대상이 누구든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거나 사랑하고 있다. 단지 바쁜 삶에 지쳐 잠시 잊고 있었을 뿐.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히 그려지는 그 사람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그가 가족이든 친구든 그저 호감 가고 궁금한 타인이든 당신은 그 사람으로 인해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든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든 상관없다. 사랑은 모두 다 아우르니까. 때로 아픈 짝사랑도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니까. 힘들고 지칠 때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 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다시 살 게 만드는 희망 같은 존재들. 세상에서 날 제일 좋아하는 울 엄마,이제는 연.. 2024. 7. 9. 나를 드러내는 용기ㅣ글쓰기, 자기 노출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희열 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를 숨 쉬는 것처럼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선 노출과 관음에 대해 두려움과 환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부터도 그러하다. 자신의 일부분 또는 전부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수치심과 죄책감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욕망의 마그마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타인에게 드러냄으로써 내 속에 존재하는 내밀한 정서와 순도 높은 욕망과 엉뚱한 상상을 과감하게 털어놓는 행위이다. 깊고 은밀하게 감추어진 욕구를 꺼내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기억 속에 잠들어 있거나 감추어진 강렬한 경험이든, 간접적으로 알게 되어 나름의 상상력과 결합해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든 그 시작이 어떻든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과 정서가 얽기 설기 복잡 미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2023. 11. 17. [생각거리] 살아남은 자의 몫ㅣ빌어먹을 죄책감? 기억하기!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선한 사람들은 사악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플라톤- 선진국뽕에 젖어있던 대한민국 서울 번화가에서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국가 부재로 일어난 참사에 정부, 지자체, 경찰 등 고위 공직자 포함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기본적이고 당연한 믿음마저 무너지고 있다. 핼러윈 거리 축제를 앞둔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10시 15분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압사 참사가 났다. 159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도심 한 복판에서 한 순간에 스러져갔다. 말도 안 되는 재난이 벌어졌다.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세월호 이후 대형 참사였고 더 지독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날 그곳은 여느 때와 같이, 매년 수십만 .. 2023. 10. 30. 할까 말까 고민이 되면 일단 go 자기 계발서에서 지겹도록 얘기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시작이 반이다', '일단 실행해라',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 등등 세상에 떠도는 공허한 외침 같은 말말말.. 당연한 진리인양 쉽고 무책임하게 조언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아 뜬구름 같은 말들. 귀가 따가워 가끔은 소음공해 같다.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에서 생각과 믿음이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루어진다'라는 말에는 쉽게 수긍할 수 없다. 생략된 주어가 모두일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없기에 실행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허울 좋은 구호로 그칠 때가 많다. 그저 남 일에 쉽게 재단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뻔한 잔소리쯤으로 여겼다. 나부터도 상황에 치여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고 휘둘리면서 살.. 2023. 4. 29. 먹방보다 쿡방ㅣ음식 만드는 걸 구경하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틈만 나면 유튜브 쿡방(cooking video)을 찾아보기 시작했다.원래 난 먹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 대충 끼니를 때우는 형편이라 당연히 요리에도 관심이 없었다.미각이 둔해서 맛집 일품요리를 먹든 단체 급식 같은 백반을 먹든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허기만 채우면 되니까 그저 먹을만하면 상관없었다. 바쁠 땐 귀찮아서 점심을 삼각김밥과 커피 우유로 때우기 일쑤였으니 말 다했지. 가족과 친한 지인들의 걱정을 살 정도로 식생활을 잘 챙기지 못했다.그러던 내가 달라졌다.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정확히는 쿡방-남이 요리하는 영상-을 보는 게 너무나 재밌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즐거움이다.음식이나 먹는 행위 자체에 관심이 적으니, 타인이 기괴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 2023. 2. 16.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