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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69

내려놓기 가볍다. 다 내려놓고 나니 홀가분하다.그동안 짐인 줄 몰랐다. 욕심껏 아등바등 끌어안고 이고 지고 버티느라 힘든 줄도 몰랐다.막상 내려놓고 나니 이렇게 날아갈 듯 가벼울 줄이야.이제와 돌이켜 보면 부족해서 괴롭기보다 과욕으로 넘치는 짐덩이를 이고 지는 게 훨씬 더 힘에 부쳤던 거 같다.온기가 그리워 미련뿐인 공허한 관계도, 가지지 못해 불쑥불쑥 욕망하는 것들도,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처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먼지 쌓인 모든 것들이 내 마음과 공간을 잔뜩 어지럽히고 있음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타르처럼 찐득하게 눌어붙어있는 것을 떼어낼 수 조차 없었다. 그저 미련스럽게 막연한 희망만 고집하면서..맞지 않은 조각들 속에 억지로 구겨 넣어서 헤어지고 닳고 있는 것도 괴로웠고 숨 막히게 비좁은 공간에서 겨우 .. 2026. 2. 3.
군자의 복수ㅣ모질지 못해도 괜찮다 착한 사람들은 모질지가 못하다.그러다 보니 복수할 때도 끝까지 가지 못하고 포기한다.이만하면 됐다고 마지막 목숨줄을 끊어내지 못해 결국 더 모질고 악독한 원수에게 앙갚음당하는 배드엔딩을 맞이한다.뻔히 그 결말이 예상되어도 손속이 모질지 못한 그들은 차라리 자신을 벌하길 선택한다. 안타깝게도.심지어 원수를 향해 단죄의 칼날을 휘두르지 못해 화병을 얻거나 자책하다 차라리 자신을 멸한다.그렇게 끝내 모질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속이 곪고 썩어 들어갈지언정 눈앞의 원수를 해치지 못하는 것이다. 역공당할지라도.그러니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여태 소수의 모질고 독한 이들에게 수탈과 억압과 핍박 속에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였으리라. 차마 양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악인들 수준으로 타락할 수 없기에, 끝내 악독해지.. 2026. 2. 3.
보통의 하루ㅣ오늘도 무탈하길 오늘 아침도 심심할 정도로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감사하게도 밤 사이 별일 없이 잠에서 깨어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하루에 소중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나에겐 그저 어제와 똑같은 평범한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평화로운 일상일 수 있다. 하룻밤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만 봐도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도 하고 또 새 생명을 잉태하거나 세상에 태어나게 하기도 한다. 크고 작지만 세상 곳곳에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 속에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하루 밤 또는 낮 시간을 보냈으리라. 열대야와 폭염, 홍수, 산불 등 지구촌 곳곳에서.. 2025. 8. 16.
불안에 대하여 | 끝없이 엄습해 오는 막연한 불안 갑자기, 전조증상 없이 시작되는, 변덕스러운 날씨 같은 불안이 있다. 아열대 기후 스콜성 소나기처럼 갑자기 찾아와 흠뻑 적시고 처참한 몰골만 남겨두고 사라진다. 소나기가 그치면 젖은 거리가 순식간에 말라 비 온 흔적조차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오직 흠뻑 젖은 옷과 축축함만 남겨 당혹스러울 뿐이다. 나한테 그런 불안이 있다. 쏟아지는 비에 꼼짝없이 젖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속수무책(束手無策), 손 쓸 새 없이 당해버리는 불안과 초조 말이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걱정 없이 태평한 성격 덕분에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쉽게 잊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남기려고 하는 나에게도 지금 이야기하려는 불안은 정말 예외적이고 특이한 경우다. 그건 막연한 사고에 대한 불안이다. 다리.. 2025. 8. 7.
내가 꿈꾸는 종말 | 나답게 있는 그대로 생애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한 건 초등학교 2학년이던 9살 여름 즈음이었다. 하교 길에 집을 코 앞에 두고, 양방향 2차로를 건너던 중 서행하던 자동차에 치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가족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던 차였고 실려가는 내내 쇼크로 정신 못 차리고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난다. 병원입구에서 응급 침상에 눕혀져 옮겨지면서 그때서야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몸이 자동차에 치여 붕 떠올라 찻길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에 비해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났다. 커다란 책가방 덕분에 뇌진탕도 없었다. 운이 좋았다. 이후 5학년 때 우연히 보게 된 석가모니 만화책을 통해 다시금 '죽음'이라는 필멸(必滅)에 대한 강렬한 두려움을 느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 2025. 7. 12.
행복이 뭐 별 건가? | 다정한 위로 집으로 가는 길, 집이 보이는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안도감이란. 금요일 저녁 퇴근길이 신나는 건, 내일 아침 알람도 끄고 내키는 대로 늦잠을 자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일주일치 피로가 가시기 때문이다. 주말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기대와 흥분이 뒤섞인 설렘은 말이 필요 없는 자양강장제다. 퇴근길 안부를 묻는 전화통화는 마음의 빈 공간까지 채워준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소리로만 전해지는 소중한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익숙하고 편안한 안정감이 찾아온다. 짧은 말 몇 마디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포근하고 충만한 안도감이 든다. 오늘도 수고했다, 밥은 먹었느냐, 아픈 덴 없냐, 마음 다치거나 힘든 일 없었느냐 등등.애정 어린 잔소리마저 다정한 위로다.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를 담아 넌지시 건네는 .. 2025. 6. 14.
눈물이 주르륵 | 울보라서 그래 눈물샘이 고장 난 게 분명하다! 툭하면 눈물 터지는 울보가 되어버렸다. 감정조절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긴 걸까? 때 아닌 눈물바람에 난처하고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젠장! 건조하리만치 뻔한 보통의 하루, 무심코 TV를 보다가 출연자 사연에 공감해 따라 우는 건 부지기수. 짧은 영상 클립 속 감동 장면에서 울컥하고 연달아 떠오른 과거 어느 기억에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친 '아하!' 깨닫는 순간에도 먹먹한 마음에 또 눈물이 찔끔. 심지어 잠들기 전 떠오른 상념들이 밀물처럼 떠밀려 올 때엔 파도에 휩쓸리듯 복잡한 심상에 빠져 베갯잇을 적실 정도로 한참 동안 울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감정이 널을 뛰는 건지, 생애 전환기 호르몬의 문제인지 원인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눈물이 많아졌고 빈도도 늘.. 2025. 6. 1.
버티기: 퇴사하고 싶은 3, 6, 9개월 차 직장인에게 최근 들어 자꾸 '탈출'을 꿈꾼다.일이 힘든 거야 옆집 초등학생도 안다. 말하면 입만 아프지. 입사 6개월 차 신입 딱지가 반쯤 벗겨졌으나 여전히 낯선 환경(조직문화와 사람들)과 업무에 적응하려고 웬만하면 그러려니 순응하고 있다. 취업한 것만으로 감사하고 벅찬 마음에 처음 몇 달은 새롭고 낯선 곳, 업무에 적응하느라 적당한 긴장과 기대에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시간이 흐르고 일이 익숙해질 즈음 취업성공의 기쁨은 익숙한 일상에 매몰되어 사라졌다. 대신 알게 모르게 누적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한계치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건 사람들과 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정서적 부대낌이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다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2024. 10. 26.
매우 짧고 힘나는 한 문장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더 할 말이 필요한가? 이 말을 듣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대상이 누구든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거나 사랑하고 있다. 단지 바쁜 삶에 지쳐 잠시 잊고 있었을 뿐.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히 그려지는 그 사람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그가 가족이든 친구든 그저 호감 가고 궁금한 타인이든 당신은 그 사람으로 인해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든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든 상관없다. 사랑은 모두 다 아우르니까. 때로 아픈 짝사랑도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니까. 힘들고 지칠 때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 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다시 살 게 만드는 희망 같은 존재들. 세상에서 날 제일 좋아하는 울 엄마,이제는 연.. 2024. 7. 9.
나를 드러내는 용기ㅣ글쓰기, 자기 노출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희열 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를 숨 쉬는 것처럼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선 노출과 관음에 대해 두려움과 환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부터도 그러하다. 자신의 일부분 또는 전부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수치심과 죄책감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욕망의 마그마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타인에게 드러냄으로써 내 속에 존재하는 내밀한 정서와 순도 높은 욕망과 엉뚱한 상상을 과감하게 털어놓는 행위이다. 깊고 은밀하게 감추어진 욕구를 꺼내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기억 속에 잠들어 있거나 감추어진 강렬한 경험이든, 간접적으로 알게 되어 나름의 상상력과 결합해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든 그 시작이 어떻든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과 정서가 얽기 설기 복잡 미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2023.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