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후반 즈음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애창곡 리스트 꼭대기에 두고 틈만 나면 노래했던 기억이 있다. 30대를 앞두고 뭔가 내 청춘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다. 세월의 무상함, 짧은 인생의 허무함 등등 그런 고민을 했더랬다.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늘 그랬다.
몇 년 전부터 조카와 동생 부부가 나를 볼 때마다 장난 삼아 반백살이라고 놀려댔다. 언제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으면서도 아직 아니니 괜찮다며 웃어넘기곤 했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다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그 나이가 되어보니 참말로 서럽고 두렵다.
아직 '중년'이라는 시기도 적응하지 못했건만, 내심 오지 않길 바랐던 '장년'이 되었다.
앞으로 노화와 질병이 정복된다면 수명이 더 길어질 수도 있겠으나, 아직까지 모두가 당연시하며 기대하는 백세 인생을 평균으로 본다면, 반백살이 된 나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지나가는 중이리라.
※ 참고로 2025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약 83.5세~83.7세로 역대 최고 수준이며 OECD 국가 중 상위권. 여성(약 86.6세)이 남성(약 80.8세)보다 5년 이상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의료 기술 발달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 출처 :국가데이터처, 「생명표」
어렸을 땐 하루가 너무 길었다. 느린 거북이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내게 남은 시간이 바닷가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게 느껴져서 주체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고 동네 구석구석 내달려도 해가 지지 않았다. 체력도 남아나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다.
혼자일 땐 멍 때리며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무료함을 참을 수 없어 아무거나 하면서 시간과 맞바꾸기도 했다. 아까운 줄 모르고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었다. 내게 닥쳐올 거라 생각하지 않고 대비하지 못한 노화와 인생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바닷가 모래인 줄 알았던 시간이 사실은 모래시계 속 모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정된 시간, 그마저도 반이나 줄었다. 무정한 시간은 멈추지 않고 모래가 떨어지듯 끊임없이 살아갈 날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제 와 막막하다.
가장 무서운 건 역시 가속 노화다. 그 기세가 마치 홍수에 불어난 강물이 넘쳐 순식간에 강둑을 무너뜨리는 것 같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생명력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말린 채소같이 쪼그라드는 신체 변화에 위기감이 든다.
돋보기 없이 책을 읽을 수 없는 노안, 원인불명의 근육통 오십견, 유난히 삐걱거리는 관절, 무너지는 몸매, 푸석푸석한 피부나 늘어난 흰머리 등 노화의 징후를 매일 마주하게 된다. 달라지는 거울 속 얼굴을 볼 때마다 매 순간 두렵다. 몸과 정신(지적 능력) 이 오래된 충전기처럼 느리게 충전되고 빠르게 닳고 있다. 갈수록 늙고 쇠약해지리라.
막연히 어른이 되면 확신을 갖고 막힘없이 나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인생의 반환점을 지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한참이건만 여전히 매 순간 선택의 기로 앞에서 주저하고 실수하고 빙 돌아가다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심지어 지금까지 선택지에서 제외했던 것들-결혼, 자녀 등-이 갈수록 아쉽고 후회가 든다. 너무 늦게 깨달아서.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된 건 아닌지 불안하다.
30대 40대를 지나오며 다른 사람들이 짝을 만나 결혼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육아와 가족 돌봄 등 책임과 희생, 헌신이라는 의무로 고생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때의 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 여행, 취미생활 등 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만끽했었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기혼자들에게.
그렇게 혼자 누렸던 시간은 순식간에 홀연히 지나가 버렸다.
왁자지껄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 텅 빈 공간과 쓸쓸한 흔적들처럼. 내게 남은 건 어쩌면 홀로 자생하는 법, 프로혼밥러, 덜 자란 어른이, 숙명이자 동반자인 외로움 정도 일까.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는 유독 너른 들판에 맨 몸뚱이로 홀로 서있는 느낌이 든다. 모두가 할 일을 멈추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공휴일엔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이나 식당, 그 밖의 공간들도 대체로 문을 닫는다. 그러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을 수밖에.
간섭하는 이가 없어 지금까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덩그러니 고독한 미래만 그려진다. 여전히 혼자가 편하지만 앞으로도 내내 혼자일까 조금은 암담할지도.
점점 더 고립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 앱을 깔아 동네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 취미 활동이나 봉사 활동 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사고나 병으로 연락처에서 사라진 지인들이 생겨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족은 존재만으로 고맙고 애틋하다. 더 자주 연락하고 보살피고 싶다. 연락이 끊어진 과거 인연들도 어찌 살고 있나 궁금하다. 여전히 연락처가 살아있는 지인들에겐 생각날 때마다 미루지 않고 용건 없이 연락하기도 한다. 그렇게 더 늦기 전에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또 만들려고 한다.
지난 일에 대한 회한도 정리가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해도 남의 떡이 커 보이듯 가지 않은 길, 포기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없으랴. 어떤 건 부질없고 어떤 건 시간이 흐를수록 미련이 덩치를 키운다. 남과 비교하고 후회하기 시작하면 우울과 절망뿐인 무저갱에 굴러 떨어질 뿐. 상처뿐인 자책은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차디찬 현실을 외면한 채 장밋빛 낙관론으로 눈 가리고만 있을 수도 없다.
두렵고 무섭다고 언제까지 외면하고 도망칠 수 있을까.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두 발을 땅바닥에 붙이고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볼 수밖에. 답은 내 안에 있으니까.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진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겉보기만 그럴싸한, 외부에서 주입된 욕망이나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TV 광고 속 멋진 집과 차, 화려한 명품, 일류 대학 졸업장, 폼 나는 직장이나 직업이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걸 이제는 안다. 반백살이 되어보니 더 그러하다. 늘 비교의 대상이 되었던 잘 나가는 엄친아, 엄친딸들은 어떨까. 모두 행복할까.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게 가치 있는 것들, 하고 싶었으나 여건이 안돼 나중으로 미루었던 미해결 과제들을 하나하나 들춰봐야겠다. 정작 하고 싶어도 너무 늦으면 체력과 열정과 시간이 없어서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간 선배들의 지혜롭고 다정한 당부가 맞았다. 가장 소중한 건 시간이고 곁에서 온기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은 가족일 수도 있고 또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두고두고 되새김질할 수 있는 추억을 잔뜩 만들어야겠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삶에 전반전이 끝났을 뿐 아직도 나에겐 후반전이 남았다. 심기일전, 다시 시작이다.
그래서 반백살에 두 번째 인생을 꿈꾼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역전의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으니 앞으로의 후반전을 어떻게 보낼지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싶은지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차분히 톺아봐야겠다. 휘황찬란한 목표나 성취가 아니어도 좋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내게 가치 있는 것들이 좋다. 내게 주어진 소명과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반려 동물이나 식물을 키우거나,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지역 봉사단체 등에서 재능기부를 하거나, 동네 도서관에서 눈길을 끄는 책 한 권 읽으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미뤄뒀던 취미 활동을 시작하고 직장이나 일을 벗어난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등등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들 말이다.
나의 경우, 늘 그랬듯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지금까진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타인의 기준에 맞춘 성장에만 매달렸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구와 집착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내면의 자원을 풍성하게 만들고 '덕(德)'을 쌓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하며 충만하게 살아가고 싶다. 후회하더라도 미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홀가분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시도해서 실패한 후회보다 시도하지 않아 두고두고 발목 잡는 미련이 더 뼈아프니까.
크기나 규모와 상관없이 자원봉사 단체나 NGO 등에서 재능기부 등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고, 미뤄두었던 피아노 배우기에 도전해보고 싶고, 영상편집도 계속 배우고 시도해서 유튜브 채널도 잘 운영해보고 싶고, AI를 잘 활용할 수 있게 최신 정보와 기술을 꾸준히 배우고 싶고, 바이브 코딩을 통해 나만의 작은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웹앱을 만들거나 창직도 해 보고 싶다. 앞으로 AI와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뾰족한 에지(Edge)를 살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
소망은 남은 내 삶을 지탱해 줄 주춧돌이자 어두운 바닷길을 밝혀주는 등대처럼 길잡이가 될 것이다. 살아있으니 계속 나아갈 뿐 포기는 없다. 묵묵히 실수와 실패를 디딤돌 삼아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뿐.
그러려면 '완벽하려고 준비만 하다가 지쳐서 시작조차 못했던' 과오부터 경계해야 한다. 실수하기 싫어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완벽한 계획부터 세우려는 건, '잘하고 싶은 욕심'이 넘쳐서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포기야 말로 스스로의 인생을 방기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완벽한 계획, 준비는 끝이 없다. 미진하게 느껴져도 그냥 지금 시작하는 거다. 일단 시작해야 실행 과정에서 마주치는 실수나 에러를 고치고 또 손보면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앞으로 남은 인생의 나침반이 될 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끝엔 독거노인 엔딩뿐이니까.
다시 키를 잡고, 바다로 나아가야겠다.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채 혼자 태평하게 시간을 허비한 게 아쉽고 뒤늦은 감이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인생은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 지금의 아쉬움이 흔적 없이 지워질 수 있는, 역전이 가능한 후반전은 이제 시작이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아 미뤘던 것들부터 챙기자. 의지가 있어도 체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건강한 몸과 마음부터 챙기자.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달리기 등 돈 안 들고 쉬운 운동부터 규칙적으로 해보자. 할까 말까 의지력을 시험하지 않아도 되는 루틴으로 만들면 좋겠다. 섬유소와 영양분이 충분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명상도 좋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여행도 떠나야겠다. 빼먹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하나씩 찾아서 하는 거다.
운동이 부담스러우면 동네 마실부터 시작이다. 지금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운동화 끈을 다시 매자.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가도 좋다. 햇빛이 반짝이고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는 상쾌함을 떠올리며 즐기러 나가자.
누군가의 말처럼 '오늘이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
지금 당장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거다. 찬란하게.
Bravo My Life(멋진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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