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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

버티기: 퇴사하고 싶은 3, 6, 9개월 차 직장인에게

by 별사색 2024. 10. 26.

갈등이 끝나고 평화가 오긴 할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최근 들어 자꾸 '탈출'을 꿈꾼다.


일이 힘든 거야 옆집 초등학생도 안다. 말하면 입만 아프지. 입사 6개월 차 신입 딱지가 반쯤 벗겨졌으나 여전히 낯선 환경(조직문화와 사람들)과 업무에 적응하려고 웬만하면 그러려니 순응하고 있다.

 

취업한 것만으로 감사하고 벅찬 마음에 처음 몇 달은 새롭고 낯선 곳, 업무에 적응하느라 적당한 긴장과 기대에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시간이 흐르고 일이 익숙해질 즈음 취업성공의 기쁨은 익숙한 일상에 매몰되어 사라졌다. 대신 알게 모르게 누적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한계치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건 사람들과 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정서적 부대낌이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다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이유도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만큼 나이를 먹었고 경험으로 깨우쳤다. 물론 안다고 해서 상처를 덜 입거나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경험치가 쌓여 충격을 줄일 대처방법이나 요령이 생겨 상처 난 마음을 숨기는데 능숙해졌을 뿐이다.

 

얼마 전부터 직장 동료 한 명 때문에 급격한 퇴사 욕구를 느끼고 있다. 나도 싱글에 올드미스인 처지라 '노처녀히스테리'라는 말이 불편하지만, 그 사람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그 표현 그대로다. 마르고 성격이 급하고 욱하는 성미로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을 정도로 히스테릭하다. 툭하면 내게 못된 말로 상처 주고 다그치고 짜증을 내며 탓하기 일쑤다. 관계 갈등은 어느 일방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으니 양 쪽 모두에게 이유가 있고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 그러니 나 또한 무고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분명 나의 어떤 부분이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성인으로서 지나치게 과격한 언어표현과 퍼붓듯 감정을 쏟아내는 태도는 선을 넘어섰다. 주변 동료들이 내게 와서 '성격 자체가 저런 사람이니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라, 무시해라'라고 말할 정도니까.

 

처음부터 잘 못된 건지도 모른다. 선 넘는 무례한 언사에 참고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만 참으면 관계가 좋아지리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분명 내게도 잘못의 이유가 있을 테니 화가 난 사람을 다독이고 사과하면 나아지리라 믿었다. 그렇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공격적인 말투와 사용하는 언어가 독해지고 본인의 화난 감정을 더 쉽게 막무가내로 내지르기 시작했다. 반복될수록 표현 수위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처음 한 번 참고 넘어간 것이 독이 됐다. 몇 달이 흐르는 동안, 그 사람과 수시로 부딪치고 감정의 골만 깊어져 가다 보니 이제는 포기상태가 되었다. 'X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핑계 대며 모른 채하는 것도 한계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가 너무 힘들기만 하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은 입장차이, 이해충돌로 부딪히며 시작된다. 의사소통의 오류와 사소하지만 성격차이 등으로 오해가 생기고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맡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고 직장동료들과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아 매번 논쟁하고 조율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니 일하는 게 힘들고 고단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관계갈등에서 오는 정서적 어려움은 일이 힘든 것과 차원이 다르다. 심리적 타격과 충격, 뒤따라오는 후유증까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부부들 이혼사유 1위가 성격차이인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부대낌은 필연이고 노력만으론 해결이 쉽지 않다. 최악의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고 오해와 반목이 반복되며 어느 한쪽이 항복하거나 포기할 때까지 악화될 뿐이다. 어쩌면 그러한 관계는 맞지 않은 부품들끼리 삐꺽거리며 서로를 마모시키기만 할 뿐. 양 쪽 모두 상처투성이 루저가 된다.

 

탈출구 없이 무한 반복되는 무간지옥에 빠진 것 같이 막막하다. 절망에 가까운 이 기분은 언제쯤이나 해결될 수 있을까? 그 사람이나 나 둘 중 한 명이 그만두는 결말 외에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까?

 

노답이라는 두 글자만 떠오른다. 갈등으로 치밀어 오른 화가 식고 이성을 찾은 뒤에도 딱히 속 시원한 해결방법을 모르겠다. 감정싸움에 지쳐 그저,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흉터가 되어 아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매일매일 버겁고 힘겨운 순간에도 떨리는 무릎에 힘 빡! 주고 꿋꿋하게 서서 버티는 건 참을만해서가 아니다. 더 이상 뒤돌아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다. 어린아이처럼 싫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듯 인상 쓰며 신경질적인 얼굴을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참고 또 참는다. 때론 못 본 체하면서 '오늘도 대충 수습한다'는 정신으로 버티는 거다.

 

맞다. 까놓고 말하자면, 당장 사표를 던지며 때려치우고 싶어도 다음 달 카드값, 대출금 상환을 생각하며 참는 거다. 저당 잡힌 미래 소득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어쩔 수 있나. 여유자금 없이 한 달 급여로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노동자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니까.

 

성질 같아서 내 마음 편하자고 당장 그만두고 싶어도 맡은 바 책임감과 다른 동료들에 대한 의리로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다. 연말이 코 앞이고 사업을 마무리할 시기인 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매일 퇴사를 꿈꾸지만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른 퇴사욕구를 누르고 퇴근과 출근을 이어가고 있다.

 

유독 힘든 어느 날 내 안에 있는 '소심하고 한심한 나'는, 부모가 부자가 아닌 것을 탓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탓하고 저축할 수 없는 낮은 급여를 주는 회사를 탓하고 부익부빈익빈 세상을 탓하다 마침내 무능한 자신까지 모든 것이 미워진다. 정말 최악이다!!!

 

최악의 최악에서 벗어나려면, 그래, 생각을 바꿔 보자!

 

우리는 치열한 경쟁이 디폴트값인 악명 높은 K직장인이다. 어느 날 승승장구하며 날아오를 수도 있으나 또 어느 날은 피로에 찌들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쪼그라들기 일쑤다.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 아닐까?

 

나와 당신은 다양한 욕구와 취향, 생각과 느낌까지 온통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매 순간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 위기의 순간에 절벽 끝에 내몰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얼음판 위에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나아가고 있으니까. 버티고 있으니까. 그러면 된 게 아닐까?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바쁘고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워 스스로 미약하고 소심해 보일지언정 멈추거나 뒤돌아 도망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우리는 버티기 장인들이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무사히 돌아온 나를 격려해 주자. 상처받고 주눅 든 나를 나까지 면박 주고 탓하고 채찍질하기보다는 또 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와서 수고했고 고생 참 많았다고 토닥토닥 다독여주자. 나의 수고를 나만이라도 알아주고 잘 버텼다고 지지해 주자.

 

이 세상에 온전히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고, 마음속 깊은 욕구와 바람, 간절함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존재니까. 양 팔로 한가득 나를 안아주자. 그러면 조금은 막힌 숨이 트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수고했다. 참 고생 많았어.

 

든 순간을 잘 버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줘 고맙다고 나한테 진심을 다해 말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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