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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잃어버린 것 1 나는 지금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원인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사고 당시 기억이 도려낸 것처럼 소실되었고 전후 사정도 대부분 흐릿하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 강렬한 순간만은 생생하다. 자동차 경적소리와 고무 타는 냄새에 이어 몸이 붕 떠 날아간 찰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진공 상태가 된 채 시야가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바뀌더니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몇 분인지 아니면 몇 초였는지 시간이 흐르고 이마를 흠뻑 적시는 무언가를 닦아내려 했는데 팔을 들 수가 없어서 몹시 당황스러웠고 갑자기 불이 꺼지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음 순간 눈 떠보니 병원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며칠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긴급 수술 등으로 상처 난 몸을 회복하고 의식을 찾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을 건너 띈 상태였다. 현재 확실하게 아.. 2022. 12. 18.
[책 리뷰] 법정의 고수ㅣ모든 사람이 주인공인 법정이야기(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피소드 원작) 자극적인 소재 없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따뜻한 드라마로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가 끝난 뒤에도 드라마 속 인물들과 에피소드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를 중심으로 법정 안팎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정감 있게 그려져 사람 냄새나는 힐링 드라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OTT라는 창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고 각종 SNS에 리뷰나 리액션 콘텐츠가 넘치게 만들어져 지금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니 한동안 쉽게 잊히진 않을 듯싶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우영우와 한바다 변호사들이 현실에 존재하길 바라기 때문에 기억 속에 흐릿해지지 않는 것일 수도. 드라마에서 매회 다루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우리 주변에 흔하게 일어날만한 일상에 가깝고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 2022. 11. 23.
[창작시]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인연인지 아닌지 포근하게 어루만지고 치열하게 부딪치고 숨 막히게 끌어안았다 차게 스쳐 지나가거나 머무르는 온기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어떤 이는 선이 닿아 인연이 되었고 어떤 이는 끈 떨어진 연처럼 멀어졌다 하나의 점으로 마침표가 되었다 아련한 기억이 되거나 애달픈 눈물이 되거나 생생한 각성제가 된다 놓쳐버린 아쉬움 되거나 끝나지 않는 악몽이 되거나 끝나지 않길 바라는 단꿈이 된다 환희 또는 실연의 밤을 지나야 안다 인연인지 아닌지 악연인지 아닌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되돌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해야 할 말 못 해 놓친 인연 하지 말아야 할 말해 떠난 인연 전하지 못한 진심 헤아리지 못한 마음 나도 내 맘 몰라 속절없는 한숨으로 지새운다 홀로 누운 어두.. 2022. 11. 16.
엄마의 겨울 외투ㅣ가진건 쥐뿔도 없지만 행복한 이유 오랜만에 지난 시간 속 감사한 것들을 뒤적거렸다. 매일 쓰려고 했던 감사일기는 생각만큼 쉽게 습관이 되지 않았다. 물론 감사했던 일을 매일매일 되짚어보고 고마운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가 얼마나 의미 있고 더 감사할 일들로 채워지는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 까먹게 된다. 매번 0에서 리셋되는 게임 속 세상처럼 말이다.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계속 상승해야 하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0부터 시작해야 된다면 얼마나 실망스럽고 막막할까. 다행히 인생은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실패나 재난으로 가진 걸 모두 잃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적자)가 될 수도 있다. 그건 말 그대로 재물이나 돈과 같은 물질적 대상이나 외부조건일 뿐이다. 돈이란 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이다... 2022. 10. 30.
무기력한 A에게 찾아온 편안한 밤ㅣ악연으로 내몰린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인간이라서 사는 동안 한 번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그 속에서 다양한 갈등과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필연적으로 실망, 분노를 넘어 증오를 일으키는 대상에게 살의를 느껴본 경험도 있으리라. 원인이 무엇이든 그러한 화와 살의가 '나'로 향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타인'에게 향하면 '범죄'의 유혹을 넘어 동기가 되기도 한다. 분노하고 증오하는 대상에게 복수를 꿈꾸거나 속이 시원해질 만큼 앙갚음하는 상상을 안 해 본 사람 있을까.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 한 번이라도 서 본 사람이라면 단순히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는 사과와 반성만으론 성이 차지 않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받은 그대로 되갚아 주고 싶은 심정도 느껴봤으.. 2022. 10. 10.
상처입은 어린 아이ㅣ사랑의 매 엄마도 나이가 드셨는지 이따금 맥락없이 과거의 얘기를 들려주신다. 어떤 계기로 생각이 난 건지 알 수 없으나 별 일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가벼운 말투로 말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같아 도통 믿어지지 않지만 걸어서 왕복 4시간씩 통학했다던 전라도 깡시골에서 자란 엄마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개구쟁이 시절 이야기들이 참 재밌다. 얌전하고 단정한 처녀가 되길 바랬던 외할머니의 바람과 정반대였던 엄마는 겁없이 무전여행을 다니고 친구들과 사고치면 앞장 서기 일수인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이름 날렸던 일화들이 이야기보따리처럼 툭툭 튀어나온다. 개구진 어린 시절 내내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수시로 매질을 당하였는데 매번 잘 도망갔다가 걸려서 두 배로 맞았던 에피소드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그밖.. 2022. 9. 19.
[창작소설ㅣ단편] 선희 씨의 선택 선희 씨에게는 아주 예쁜 딸이 한 명 있다. 정말 뻔한 얘기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어여쁘다. 일찍 떠난 아빠를 닮아 흰 피부에 눈 코 입 오목조목 조화롭다. 특히 환하게 웃을 때면 긴 눈꼬리의 외까풀 눈이 사르르 감겨 웃는 이모티콘처럼 선만 남곤 했는데 보는 이도 절로 따라 웃게 만들었다. 더불어 움푹 패이는 볼우물이 볼수록 매력적인 아가씨다. 단정한 외모뿐 아니라 선하고 바른 언행에 주위의 칭찬이 자자해서 선희 씨에게 늘 자랑스러운 딸이다. 시내 번화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희 씨 집은 주택가여서 평소 조용하고 사건사고도 없는 평범한 작은 동네이다. 집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번화가가 있는데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선희 씨가 데리러 나가곤 했다. 집 근처까지 .. 2022. 9. 8.
어리석은 과거의 나 바로보기:마이너스에서 제로 그리고 다시 시작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으슬으슬 서늘함에 재채기가 절로 나오는 가을이 왔다.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톡 알림에서 봤다며 생일 축하 인사 메시지였다. 아마도 서류상 생일이 자동으로 반영되어 톡 친구 알림에서 확인한 듯하다. 한동안 소원해진 친구였으나 반가움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팬데믹 등 여러 가지 일들로 마지막 통화했던 2019년 이후 각자 큰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식 날까지 잡아놨다 파혼했고 친구는 아이를 낳아 벌써 4살이라고 했다. 장녀와 막내아들을 가진 오누이의 엄마가 됐다더라. 신기했다. 내가 비혼을 외치며 룰루랄라 놀면서 보내는 동안, 친구는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했다니.. 같은 나이 .. 2022. 8. 26.
[영화리뷰] 헌트ㅣ사냥꾼이냐 사냥감이냐 한국영화 부흥기를 온몸으로 겪은 두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청춘의 아이콘이던 시절의 영화 (1999) 이후로 23년 만에 동반 출연한 첩보 액션 영화, 를 봤다. 특히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과 관련된 사실 기반 영화라 더 흥미로웠다. 배우 이정재는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에서 지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기훈'역을 맡아, 죽음의 게임에서 살아남고자 인간성마저 해체되는 사람들 속에서 처절하게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로 열연했기에 일약 세계적 스타 배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해외 유수의 시상식서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의 감독 데뷔작인 에 대해 대중뿐 아니라 많은 영화 관계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는 “액션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심리 첩보전”(DEADLINE), “세련되고 진지하며 빛나.. 2022. 8. 14.
[책추천]집필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책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글쓴이가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로 일하면서 겪었고 느끼고 조언해주고 싶었던 내용을 담아 작가와 출판에 대해 쓴 안내서다. 책을 쓰고 싶은 예비 작가라면 한 번 쯤 읽어볼 만 하다. 인상적인 부분 요약정리(※책의 내용 요약정리 및 인용했습니다.) 1. 글로써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을 알리고 싶다면, 진정 인생을 바꿔주는 책을 쓰고 싶다면,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내가 독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 책을 사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반드시 고민하길. 2. 표현력과 문장력을 기르려면, 닮고 싶은 작가의 글 계속 읽고 필사해 보고 '나라면 이 문장을 어떻게 바꾸어 쓸 수 있을까' 꾸준히 연구하고 많이 쓰고 생각하기. 만약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부끄럽고 어디 내놓.. 2022.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