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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

연락처를 정리할 때가 왔다.

by 별사색 2021. 4. 9.

친한 친구란..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 사람 사이의 소통 도구가 다변화 된 요즘,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부 용량만 차지한 채 처치곤란인 ‘그냥 아는 사람들’ 목록이 늘어날 때면 답답할 때가 있다. 나만의 고민이 아닌지 이 때문에 아예 카톡을 삭제했다는 어떤 이의 사연이 기사화되기도 한다. 나 역시 적지 않은 사회생활 통해 마주친 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가는 연락처 속에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친구’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편의상 일시적으로 연락처를 나눈 업무 관계, 서로 연락하지 않는 과거 직장동료, 그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지우기도 애매하여 형식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스쳐간 인연들의 목록을 정리하려는 데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있다.

 

오지랖 넓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만나자마자 친구하자 손 내미는 나란 사람은 비록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 못할 지라도 ‘절교’라는 건 인연이 없는 단어였다. 게다가 내가 먼저 끊어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여고 동창생 한 명과 어떤 계기로 절교를 한 기억이 있다. 절친이라고 말할 순 없으나 고교 졸업 후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친구 사이가 정리되어 버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 일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으리라.

 

다툼의 원인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사소했다. 내게 그 친구와의 우정을 단숨에 무가치하게 느껴지게 만든 건 친구가 뱉은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격양되던 순간 찬물을 끼얹듯 친구가 외쳤다.

 

“우리 서로 웃으면서, 좋은 모습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물론 좋게, 잘 지내자는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중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막역하고 다정한 친구 사이에도 의견 대립과 다툼으로 인해 감정이 상할 수 있다. 그것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얘기다. 가능하면 싸움을 피하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현명하겠지만 생각과 느낌이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화해는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우정을 성장하게 하고 돈독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갈등과 다툼 자체를 부정하고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친구의 말 속에 담긴 ‘서로 좋은 얼굴과 모습만 나누며 지내자’는 말은 어린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좋은 면, 밝은 면에 매력을 느끼고 가까이 두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것이지 겉으로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속빈강정 같은 형식적인 친구 관계를 말하는 그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 의견 차이가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그 친구와 언성을 높이며 싸워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다. 그 친구와는 그날의 다툼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서로 진심으로 속내까지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속 깊은 우정을 나누며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인생을 함께 나누고 살아갈 벗이고 동행이다. 그런데 단지 좋게만 지내자는 그 친구의 제안이 ‘우리의 우정은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내 우정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 이후, 만남이나 연락은 뜸해졌고 그렇게 그 친구는 내 인생에서 로그아웃됐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를 함께 아는 여고 동창생을 만나면 생각나기도 하고 얘기 중에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내겐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 때의 나와 그 친구도 20대 중반의 뭘 모르는 미숙한 풋내기였던 건 분명하다.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불완전한 나까지 포함해 온전히 교감하길 원했던 관계에 응해주지 않는 친구에게 화가 났으리라.

 

누구나 좋아해주는 장점이나 밝은 면보다 약하고 어둡고 부정적인 모습까지 수용하고 존중해주길 바라는 마음. 이것이 인간의 가장 깊고 강한 욕망인 ‘사랑받고 싶은 욕구’의 핵심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밝고 어두운 양면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온전히 교감할 수 있는 관계를 열망한다. 그것이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사랑하고 보듬으며 때론 양보와 희생을 감수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존중받고 확인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목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그 소중한 대상이 단 한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우리 삶이 더 풍요롭고 완전해지지 않을까? 이제부터 ‘양보다 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은 이름들이 눈에 띄는 복잡한 내 연락처를 정리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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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 글을 옮겨왔습니다.
출처: https://sudanaegong.tistory.com/entry/연락처를-정리할-때가-왔다?category=551862 [세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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