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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

[자작시] 상허 이태준 고택에서

by 별사색 2021. 4. 9.

상허 이태준 고택 수연산방,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홈페이지

겨울을 무사히 난
가지 많은 나무 한 그루

정원 가득 뻗어나가
아니 닿는 곳 없다

봄기운 맞이하러
새순, 새잎 돋아나
금세 수북하여라

울창한 여름 꿈꾸는
정원의 나무
수줍게 봄을 노래한다

주인이 내온
알싸한 냉이차
봄 향기 가득해

한 모금 두 모금
내 몸속 세포도
기지개를 켠다

 

*****

지인과 함께 방문했던 '상허 이태준 고택'에서 차 한 잔 시켜 놓고 정원을 바라보는데..

작은 정원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가지가 푸르게 뻗어있는 게 신기하고 예뻤어요.

다녀온 지가한참이라 여전히 그대로인지 모르겠지만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나중에 혹시 성북동에 가실 기회가 있다면 고택에 들러 제철 차도 한 잔 드시고 여전히 그 나무가 잘 지내는지 안부 전해주세요^^

 

상허 이태준에 대해,
작품의 경향은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 많고, 세련된 문장으로 1930년대 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특히 단편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 하여 “한국의 모파상”이라고도 불린다.
1930년대에는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활동, 이상의 천재성에 주목해 그에게 시를 쓸 것을 권유하였다.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던 여운형에게 부탁해서 이상의 시를 신문에 내도록 도와주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시가 오감도이다.
박태원과 조용만 등 비롯하여 절친한 구인회 동료들이 친일 작품을 창작하던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1943년에 안협(현재의 북철원군)에 낙향해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친일행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몇 되지 않는 작가들 중 하나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경향파 문학과는 거리를 두었던 이전까지의 경향과는 달리 조선 문학가동맹과 민주주의 민족전선 등 좌파 계열에서 활동했으며, 한국 전쟁 이전인 1946년경에 월북하였기에 이후의 행적이나 세상을 떠난 시기가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이태준은 김일성을 영웅화하라는 노동당의 지시를 정면으로 비판, 거부했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 위키백과 이태준(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D%83%9C%EC%A4%80)

예전 블로그 글을 옮겨왔습니다.(여기저기 블로그들을 통합+정리 중입니다)
출처: https://sudanaegong.tistory.com/entry/자작시-상허-이태준-생가에서?category=551863 [세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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