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괴롭힘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갈등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중엔 인간관계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시기, 질투, 미움, 의견 대립,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을 비롯해 심한 경우 '사내 괴롭힘'같은 문제 행동도 있을 수 있다. 중년이 된 내가 적지 않은 사회생활을 통해 지금까지 겪었던 사람 중에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어느 심리학자의 강연 동영상을 보고 떠오른 Z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퇴사하는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사무실 열쇠는 두고 나오는데 웬일로 늦게까지 남아있던 Z가 말을 건넸다. 갈 곳은 정했냐고. 의외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으나 애써 담담하고 솔직하게 당분간 쉴 거라 얘기했다. 곧이어 Z의 행동에 기함했다. 진심인지 모를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선물까지 건넬 거라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전날 저녁 송별회를 근처 뷔페에서 근사하게 치르며 모든 미련과 부정적 감정까지 날려버리고 후련해진 터라 Z의 예측불가 행동에 더 황당했었다.
Z가 눈물을 보이며 건네준 선물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3세용이라고 적힌 상표가 달린 주먹만 한 크기의 헝겊 인형이었다. 이건 무슨 뜻?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황당 그 자체였다. 아니 소름이 끼쳤다.
1년 반 동안 나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고 그토록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Z가 10년 묵은 체증을 해결했다고 속으로 기뻐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울면서 선물을 건넨다고? 대체 왜? 마지막이라서? '속 시원하게 그만둬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인가? 아님 그동안 나에게 범죄나 다름없는 말 못 할 못된 짓을 한 것에 대해 뒤늦게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나? 설마 때 늦은 반성이라도 하는 걸까?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대체 무슨 생각과 의도를 가진 행동인지 감도 안 잡혔다.
소시오패스 Z
같은 직무와 계약 조건으로 함께 근무하기 시작했던 Z는 흔히 말하는 소시오패스였다. 나중에서야 Z의 과거 직장 동료였던 사람에게 듣고서야 내가 느꼈던 괴롭힘과 시달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경쟁심리가 강하고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낸 건 같은 일을 하는 내가 본인보다 어린데 경력이 더 많다는 이유였다. 당시 Z는 40대였고 난 30대였다. 근무 초기 나이 차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언니 동생 삼아 금세 친근해졌기에 급변한 Z의 태도에서 그 간극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내가 관리자 등 주변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자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시와 째려보기 같은 나만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퇴근 후 둘이 있을 때 막말을 하는 등 사람들이 안 보는 자리에서만 교묘하게 괴롭혔다. 어떤 땐 유아기 아동이나 할 법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로 음식 등을 사 와서 사무실 안 모두의 자리에 일일이 찾아가 나눠주면서 아무도 모르게 나만 쏙 빼놓는다든지 유치한 행동에 당황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처음엔 내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나 스스로를 의심하며 속상해했다. 미운데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Z를 통해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는지 모른다. 이유를 나한테 찾다가 참을 수 없어져 그녀에게 묻기까지 했으나 돌아온 건 냉대와 무시뿐이었고 괴롭힘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갈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하거나 거짓말은 예사로 하였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치졸한 괴롭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었다. 나중에서야 심각성을 깨달을 때까지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어느 순간 난 '무기력한 피해자'가 되어있었다. 차라리 대놓고 싸웠으면 좋으련만 은밀하고 교묘한 괴롭힘은 제3자가 보기에 단지 둘 사이가 나쁘지만 각자 업무에 큰 지장이 생긴 게 아니니 둘이 해결하도록 관여하지 않았다. 혼자 감내하는 것 외에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괴롭힘에 적응해가고 있었던 거 같다. 소시오패스 행동으로 알만한 사람 사이에서 유명했다는 Z의 전 직장 동료의 얘기를 듣고 포기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Z로 인해 장기간 은따와 같은 상황에 놓였고 심각한 자존감 저하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다시 떠올려봐도 그때의 난 무기력감에 빠져 막막했던 거 같다.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Z의 악질적인 괴롭힘으로 살이 빠지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무작정 견뎌내야만 했다.
만약 맡은 일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마저 없었다면 1년 반도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나와의 상담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학생들이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나눈 교감-뿌듯함과 순수한 기쁨만이 버팀목이었다. 더불어 업무 성과도 좋았고 주변의 인정과 직무만족도가 높았기에 Z의 일방적인 '사내 괴롭힘'을 버틸 수 있었다.
참다못해 퇴사하려 했으나 주변의 격려와 조언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텨가던 중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도를 모르는 Z가 보통사람이라면 윤리적으로 쉽게 할 수 없는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하였다. 첫 째는 나의 상담 스케줄을 맘대로 취소하고 예약시스템을 꺼버리는 등 업무 방해였고 두 번째는 지나친 경쟁심에 나보다 더 좋은 성과를 올리고자 결과보고서에 수치 조작을 하였다. 첫 번째는 한동안 나한테 상담받던 학생들이 말도 없이 갑자기 Z에게 상담받는 사례가 늘어서 의문을 갖던 중 어느 날 친한 학생이 상담예약이 멋대로 취소되거나 예약 자체가 안된다고 얘기해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팀장님이 Z가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보여주어 알게 되었다. 나와의 관계를 떠나 정도를 넘어선 Z의 행동에 기함했고 더 이상 나 혼자만 참으면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공식적으로 팀장 및 관리자에게 보고하였으나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치부라는 팀장 의견에 따라 내부적으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매일 속으로만 생각했던 퇴사를 공식화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마지막 날 눈물을 흘리며 선물을 건넨 Z의 진심은 본인만 알겠지만 그때 내 머리를 스쳐간 생각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단어와 함께 소름 돋는 꺼림칙함 뿐이었다. 어색한 연기를 하듯 감정이라곤 단 1%도 보이지 않는 창백한 얼굴에 인공눈물을 눈에 넣은 듯 무감하게 흘러내리는 눈물도 기이했지만 선물이라며 건넨 상자 속 작은 토끼 인형을 보고 소름 끼치는 저주인형을 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이유 없이 미워하고 괴롭히던 사람이 그런 일 따위 없었던 것처럼 어이없게 선물이라니, 그것도 인형뽑기에서 건져온 듯한 조잡한 토끼 인형이라니 쓰레기 투척하는 건가 싶어 됐다고 사양하고 뒤돌아서는데 들고 있던 종이가방에 억지로 쑤셔 넣는 거침없는 행동에 또 깜짝 놀랐다. 진짜 저주인형인가 싶어 꺼림칙했다.
Z의 예상치 못한 눈물과 저주인형에 얼빠진 멍충이같은 나는 '나한테 왜 그랬냐'라고 화 한 번 내보지 못하고 되려 '내가 더 잘하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제길! 갑작스러운 피해자 코스프레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처럼 억울해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뒤통수를 세게 맞고 혼이 나간 상태로 친하게 지내던 다른 파트 동료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약속 시간에 늦은 이유를 설명하니 호탕하게 웃으며 여우에 홀린 듯 얼빠진 나를 위로해 주셨다. 고소하게 구워진 생선구이와 감칠맛 나는 냉메밀로 맛난 저녁을 먹고 아주 오래 동안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돌이켜보면 처절하게 힘들었던 직장생활에서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건 또 다른 직장동료였고 힘든 나를 붙잡아준 좋은 언니를 얻게 된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극적인 경청 모드인 언니와 대화를 나누며 자책을 멈추고 답답함을 덜어냈더니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악몽 같았던 소시오패스 Z와의 부대낌도 오늘로써 끝났다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이 후련했다. 내내 태풍 속에 끝없이 출렁이는 조각배처럼 울렁거리던 속이 가라앉고 마침내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느낌이었다. Z의 교묘한 괴롭힘과 미친 언행으로 피폐해져 누더기처럼 헐었고 해져서 무너지기 직전에 도망치는 꼴이지만 일말의 아쉬움조차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오랜 변비를 해결한 직후의 날아갈 듯한 기분이랄까?
게다가 항상 꿈으로만 생각했던 '어학연수와 장기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모든 근심과 걱정을 뒤로 보냈다. 스스로의 결정에 불안해하거나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앞으로 아주, 매우, 환상적으로 잘 될 거니까 걱정은 그만,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니까 긍정의 힘을 믿어보자!"라고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에 가까운 셀프 응원을 주문처럼 되뇌며 기운을 북돋았다. 감사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아픈 만큼 성장하다
소시오패스 Z를 애초에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픈 만큼 성장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장기 해외 체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마음 그릇을 키워 돌아왔다. 이후 심리학 공부를 좀 더 했고 직업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다행히도 Z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지만 몇 년 후에 아무 예고도 없이 '사과 문자'를 받고 당황하기는 했다.
부디 앞으로 Z와 같은 소시오패스를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다음에 또 이와 유사한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힌트를 얻었다. 절대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 가만 놔두면 바늘도둑이 소도둑으로 발전(?)하듯 범죄의 빈도 및 강도만 강화될 뿐이라는 걸 직접 처절하게 겪었기에 반드시 초기에 적극적인 해결만이 최선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나와 같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확률적으로 봐도 평생에 한 번쯤은 소시오패스 든 성격장애 등 어떤 형태의 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불행히도 마주칠 수 있다. 이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같은 것이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책하거나 무기력에 빠진 피해자가 될 때까지 혼자 감내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충분히 미리 알고 혼자 대처할 수도 있겠으나 불행히도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 가스 라이팅 하거나 먹잇감으로 삼아 뼛속까지 발라낼 수 있으니. 절대로 혼자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대하려 시도하지 않길 바란다.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의 차이> 관련 참고 뉴스
https://www.ajunews.com/view/20210207170049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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