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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

이사

by 별사색 2022. 3. 3.

 

이사, 이미지 출처:Pixabay

이사를 했다. 오전 8시부터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짐을 옮기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밤 10시가 넘었다. 모든 짐들이 자기 자릴 찾으려면 어림 잡아도 며칠 걸릴 정도로 정리할 물건들이 여기저기 집안 곳곳에 뭉쳐서 쌓여있다. 멍하니 배터리가 나간 것처럼 손 하나 까닥 못할 만큼 피곤함이 몰려오자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이삿짐 정리하고 치울 생각에 막막해도 새 집으로 이사 와서 너무나 좋다. 건축한 지 얼마 안 된 새집인 데다 작은 평수에도 구조나 배치 덕분에 널찍하고 쾌적하다. 특히 곳곳에 콘센트가 많아서 가지고 있는 전기용품에 넉넉하게 연결할 수 있고 핸드폰 충전할 때 빈 곳을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서 좋다.

전에 살던 집은 2층짜리 주택으로 집주인이 1층이고 우리 집은 2층이었는데 집주인이 수시로 올라와 한참 연상인 엄마에게 큰 목소리로 반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억센 여자였다. 결국 못 견디고 계약기간이 여러 달이나 남았으나 선불로 낸 집세를 포기하고 이사하게 되었다. 재래시장서 소매품 판매를 하는 사람이라 목소리도 크고 드센 성격에다 직업상 '을'로 쌓인 게 많은지 화가 많아서인지 수한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 '갑질'하며 괴롭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차라리 나한테 하면 참을 수 있는데 70대 엄마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을 직접 봤을 땐 눈이 뒤집힐 만큼 화가 치밀었다. 결국 엄마의 만류로 계속 참다가 이사 직전 대차게 싸우고 사과 같지 않은 어색한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울화가 치민다.

게다가 지붕에 씌워진 기와장이 깨지고 바닥과 벽 시멘트가 금이 갈 만큼 워낙 오래된 옛날 집이어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게 가장 힘들었다. 방충, 방한, 방음 등을 기대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더울 땐 각종 벌레들과 동거하고 추운 겨울엔 아무리 석유보일러를 때고 창문에 뽁뽁이 등 방한처리를 해도 실내에서 털옷을 입고 있어야 할 만큼 한기와 한파에 시달려야 했다. 벽과 창문 틈새 찬바람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추위만으로도 힘든데 집주인 여자의 신경증적인 갑질이 점점 심해지니 선불로 낸 집세를 돌려주지 못하겠다는 집주인이 얄밉지만 차라리 이사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 싶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하게 된 것이다.

옛날 집과 비교하면 새로 이사 온 곳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새집이라 모든 것이 다 새롭고 쾌적하고 편리하며 무엇보다 따뜻하고 아늑하다. 작은 평수라도 잘 짜여진 구조와 배치 덕분에 충분히 넓게 느껴지고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한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늑하고 좋은 곳으로 이사 와서 너무나 기쁘다. 전처럼 추워서 몇 겹의 옷을 입고 이불로 꽁꽁 싸매고 잠들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다.

 

전에 살던 집을 떠올렸을 때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게 있다. 주택가 골목 고만고만한 2층집들 사이에 있다 보니 시야가 탁 뜨인 마당에서 쬐는 햇볕만큼은 원 없이 누렸다는 점이다. 날이 좋으면 햇빛에 바싹 마른 수건과 옷가지들의 바삭바삭한 촉감까지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곳에서 있었던 안좋은 기억은 모두 떠나보내고 좋은 추억만 남겨야겠다. 부디 앞으로는 새 집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좋은 일만 많기를 바란다. 많은 짐들을 버리고 왔음에도 정리할 물건이 언덕처럼 거실 한편에 쌓여있지만 전날까지 스트레스받던 상황에서 탈출(^^?) 한 것만으로도 평화와 안정을 찾아서 앞으로가 기대되고 행복하다.

내 마음 속 꿈꾸는 집, 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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