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라서 승객 모두가 지루하고 나른한 공기 속에 있었다. 문득 눈에 들어온 건너편 곤하게 잠든 세 모녀의 모습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 2~3학년 즈음돼 보이는 큰 딸아이와 의자 위로 작은 다리가 달랑거리는 작은 아이, 수마에도 불구하고 보호하듯 아이들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절로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꼭 예전 우리같이 느껴졌다.
명절 때가 되면 엄마와 나, 동생 셋이서 동인천 할머니 댁에 기차를 타고 가곤 했었다. 우리가 살던 서울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 인천까지 가려면 꼬박 2~3시간 동안 기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자고 또 자도 눈을 뜨면 여전히 이동 중인 기차 안이어서 그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몸살 날 만큼 머나먼 여정이 피곤해 도착할 즈음이면 저들처럼 곤히 잠들기 일쑤였다.
서로에게 기대 머리를 맞댄 채 졸고 있는 모습이 그 때의 우리와 겹쳐져서일까? 코끝이 찡하도록 그리움이 넘실댔다. 그땐 그렇게 그 길이 멀고 고단했기에 기억할 만한 것 따위, 힘든 기억뿐이라 여겼었다. 이제와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으로 마음에 남았구나 싶다. 그리움이 짙어지자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병으로 일찍 남편을 잃은 뒤 자식밖에 모르던 엄마는, 한 남자를 만났고 그의 여자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한 세트 같던 세 모녀의 유대감은 물에 젖은 종이처럼 쉽사리 찢어졌다. 서운함을 토로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영원할 것 같던 아늑한 울타리에서 등 떠밀려 쫓겨난 기분이었다. 어찌나 황망하고 억울하고 허전하던지 그때의 상실감은 금세 배신감으로 변질됐다. 그 당시엔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시지 않을 상처라 생각했었다.
시간의 속도를 따라주지 않는 더딘 회복력 때문일까? 이런저런 사건들과 상처를 남긴 기억들로 빚어진 감정의 찌꺼기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린다. 여전히 상처는 덜 아물었고 진행형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현듯 그리운 걸까?
멀어지는 거리감에 누가 먼저 나서지 못한 채 시간의 부피만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엄마의 주름이 늘고 어린 동생은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는 좀 철이 들었다. 그간 많은 일들로 우리 세 모녀를 둘러싼 상황과 서로의 입장, 마음까지도 어느 것 하나 예전 그대로 인 것이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엄마를 떠올리면 늘 서운함이 먼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리움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지금처럼 과거 어느 날의 추억과 마주 보게 될 때면 엄마와 보낸 친밀한 순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강보에 쌓인 아이처럼 품에 안겨 맡았던 익숙한 엄마 냄새, 주변 공기까지 따듯해지는 포근함,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느긋한 감정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온다.
엄마는 그렇게 세상과 나 사이,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울타리로 여겨지는가 보다. 해소되지 않은 야속함이 아무리 커도 원초적인 그리움보다 앞서지 못하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분주한 와중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세 모녀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아마도 그들 주변은 다른 공기 속에 유리된 듯 아늑하고 고요해 보이기까지 하다. 나 역시 그들의 평화로운 오수처럼 나른한 추억 속에 잠겨있었다.
그리운 그때를 떠올리는 현재의 나는 조금 더 넉넉해졌다. 따사로운 오후 햇볕에 기지개 켜는 새끼 고양이처럼 넘치도록 무료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졌다.
입가에 미소를 담고 조심스레 휴대전화에 저장된 단축번호를 눌러본다. 곧 들려올 익숙한 목소리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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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 글을 옮겨왔습니다.
출처: https://sudanaegong.tistory.com/entry/동인천으로-가는-기차-안에서?category=551862 [세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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