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색88 상처입은 어린 아이ㅣ사랑의 매 엄마도 나이가 드셨는지 이따금 맥락없이 과거의 얘기를 들려주신다. 어떤 계기로 생각이 난 건지 알 수 없으나 별 일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가벼운 말투로 말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같아 도통 믿어지지 않지만 걸어서 왕복 4시간씩 통학했다던 전라도 깡시골에서 자란 엄마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개구쟁이 시절 이야기들이 참 재밌다. 얌전하고 단정한 처녀가 되길 바랬던 외할머니의 바람과 정반대였던 엄마는 겁없이 무전여행을 다니고 친구들과 사고치면 앞장 서기 일수인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이름 날렸던 일화들이 이야기보따리처럼 툭툭 튀어나온다. 개구진 어린 시절 내내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수시로 매질을 당하였는데 매번 잘 도망갔다가 걸려서 두 배로 맞았던 에피소드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그밖.. 2022. 9. 19. [창작소설ㅣ단편] 선희 씨의 선택 선희 씨에게는 아주 예쁜 딸이 한 명 있다. 정말 뻔한 얘기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어여쁘다. 일찍 떠난 아빠를 닮아 흰 피부에 눈 코 입 오목조목 조화롭다. 특히 환하게 웃을 때면 긴 눈꼬리의 외까풀 눈이 사르르 감겨 웃는 이모티콘처럼 선만 남곤 했는데 보는 이도 절로 따라 웃게 만들었다. 더불어 움푹 패이는 볼우물이 볼수록 매력적인 아가씨다. 단정한 외모뿐 아니라 선하고 바른 언행에 주위의 칭찬이 자자해서 선희 씨에게 늘 자랑스러운 딸이다. 시내 번화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희 씨 집은 주택가여서 평소 조용하고 사건사고도 없는 평범한 작은 동네이다. 집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번화가가 있는데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선희 씨가 데리러 나가곤 했다. 집 근처까지 .. 2022. 9. 8. 어리석은 과거의 나 바로보기:마이너스에서 제로 그리고 다시 시작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으슬으슬 서늘함에 재채기가 절로 나오는 가을이 왔다.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톡 알림에서 봤다며 생일 축하 인사 메시지였다. 아마도 서류상 생일이 자동으로 반영되어 톡 친구 알림에서 확인한 듯하다. 한동안 소원해진 친구였으나 반가움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팬데믹 등 여러 가지 일들로 마지막 통화했던 2019년 이후 각자 큰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식 날까지 잡아놨다 파혼했고 친구는 아이를 낳아 벌써 4살이라고 했다. 장녀와 막내아들을 가진 오누이의 엄마가 됐다더라. 신기했다. 내가 비혼을 외치며 룰루랄라 놀면서 보내는 동안, 친구는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했다니.. 같은 나이 .. 2022. 8. 26. [영화리뷰] 헌트ㅣ사냥꾼이냐 사냥감이냐 한국영화 부흥기를 온몸으로 겪은 두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청춘의 아이콘이던 시절의 영화 (1999) 이후로 23년 만에 동반 출연한 첩보 액션 영화, 를 봤다. 특히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과 관련된 사실 기반 영화라 더 흥미로웠다. 배우 이정재는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에서 지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기훈'역을 맡아, 죽음의 게임에서 살아남고자 인간성마저 해체되는 사람들 속에서 처절하게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로 열연했기에 일약 세계적 스타 배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해외 유수의 시상식서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의 감독 데뷔작인 에 대해 대중뿐 아니라 많은 영화 관계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는 “액션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심리 첩보전”(DEADLINE), “세련되고 진지하며 빛나.. 2022. 8. 14. 청소의 힘ㅣ시드니 셰어하우스의 변화 •저장강박증 •시드니 셰어하우스 •환경의 변화와 삶의 질 청소, 출처: Pexels 무료 이미지 초봄에 이사하면서 다양한 잡동사니들을 버려야 했다. 꽤 넓은 창고와 집안 구석구석 빼곡히 채워져 있던 각종 물건들 대부분은 빈 플라스틱 병, 이미 용도를 다했거나 재활용도 할 수 없는 부속품, 오래된 전자기기처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데 버리지 못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오래되었으나 박물관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을 만큼 희소하지도 않고 심지어 망가져 작동조차 되지 않는 잡다한 소모품 등이 넘쳐났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물건인지 그 출처와 용도도 가물가물한 물건들 중 태반이 낡고 해지고 볼품없어 아무리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해봐도 내 눈엔 쓰레기였다. 이사 온 집이 신축이라 깨끗하고 공간 배치가 .. 2022. 7. 14. 떠올리기만 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대해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다 보니 반복해서 자주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도 그중 하나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양하겠지만 내 경우 주요 관심사인 '행복'에 대해 자꾸 스스로 묻는다. 딱히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어중간한 무덤덤한 상태이거나 '그저 그런'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애매한 때가 더 많다. 혹은 평상심이라 할 수 있는 평온함일 수도. 다만 혹시라도 지금 불행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우울한 기분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내리막길에 가속이 붙을 수 있으니 방치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금, 나는 행복해 질까?' 11살 초등학생 조카가 학교 생활, 친구 관계, 공부와 학원 스트레스로 사는.. 2022. 6. 20. 감사일기 2022.06.07ㅣ비 오는 날 도서관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가뭄을 씻어내기엔 충분하진 않아도 꽤 숨통이 트일 정도는 될 듯하다. 여름을 향해 가던 더위가 힘 세지기 직전에 내린 촉촉하고 시원한 빗물에 한 풀 기세가 꺾인 느낌이다. 어쨌거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경우 농사와 하등 상관없는 사람이라 가뭄에 대해 관심 갖지도, 걱정조차 해본 적 없지만 분명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에 영향을 끼쳤을 터이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으로서 뜨겁게 달궈져가던 때에 시의적절하게 내리는 비가 감사하다. 공기 중 먼지와 눅진하게 찌든 때까지 모두 빗물에 씻겨내려가 숨 쉴 때 상쾌한 느낌이다. 물론 습기로 눅눅해진 질감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틀째 내리는 빗물에 충분히 적셔진 공원의 나무도 길가의 가로수도 길바닥 틈틈히 보이는.. 2022. 6. 7. 어느 위선자의 서글픈 변명ㅣ착한 척은 그만두기로 나에겐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말하면서 생각하는 나는 충동적이고 기분파에 일 벌이기 좋아하는 반면 생각이 정리돼야 말을 꺼낼 수 있는 동생은 이성적이고 논리적 판단과 계획 세우기, 정리정돈을 즐겨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특히 팩트 폭력에 일가견이 있다. 어느 날 그 애가 내게 말했다."언니 안 착해. 이기적이야. 이젠 그냥 인정하고 편하게 살아." 충격적이었다. 갑작스레 허를 찔린 기분이랄까. 순간 이게 뭐지? 싸움 거는 건가 싶고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몰아쳤다. 처음 감정은 화가 났다. 동생이 대뜸 말로 내뱉은 순간엔 나를 단정 짓고 함부로 평가하는 듯해 욱하는 반발심이 솟았다. 선빵에 케이오당한 듯 잠시 멍해진 채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당황이 곧 부끄러움이 됐다. 어쩌면 속내를 들켜.. 2022. 6. 4. 감사일기 2022.06.03ㅣ시즌제 예능 시청의 늪 이모랑 둘이서 어젯밤 늦게 시작한 '예능 시리즈 시청'이 아침 눈뜨면서 이어 보기 시작해 내내 TV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 먹을 때까지 거의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이나. 둘이서 마음이 맞아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의 끝을 보기 위해 밥 먹는 시간 등 최소한으로 처리하고 내내 TV 앞에 나란히 붙어 앉아 집중했다. 결국 시리즈를 끝냈고 시원섭섭함을 느껴야 했지만. 어쨌거나 최근에 이렇게 장시간 무언가에 집중해 본 일이 또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옆에 마음이 통한 이모라는 파트너가 있기에 함께라서 가능했지 않을까? 숙제처럼 해치운 느낌도 들지만 여하튼 계획한 프로그램 시청을 완료하고 함께 후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이모가 있어 감사하다. 장시간 TV 시청하는 이모와 조카를 지켜보던 엄마가.. 2022. 6. 3. 감사일기 2022.06.02ㅣ다시 시작 오늘부터 블로그에 감사일기를 쓰려고 한다. 그 시작을 알리고 나 스스로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고자 기록한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단 몇 줄이라도 하루를 기록하려고 한다. 그동안 손으로 일기장을 써왔다. 볼펜을 꾹꾹 눌러써 한 자 한 자 생각을 오롯이 써 내려가는 과정이 즐겁다.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이 쌓여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뭐라고 뿌듯하기까지 하다. 일기장을 쓰고 다시 들여다보지 않으니 이것 또한 먼지에 파묻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으로 바꿔보려 한다. 종이 낭비도 줄이고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선 글 찾기나 수정도 다시 보기도 쉬우니까. 훗 날 나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블로그도 재정비하였.. 2022. 6. 3. 이전 1 2 3 4 5 6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