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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색/에세이*시*소설

불안에 대하여 | 끝없이 엄습해 오는 막연한 불안

by 별사색 2025. 8. 7.

흑백 소년, 출처: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갑자기, 전조증상 없이 시작되는, 변덕스러운 날씨 같은 불안이 있다. 아열대 기후 스콜성 소나기처럼 갑자기 찾아와 흠뻑 적시고 처참한 몰골만 남겨두고 사라진다.

 

소나기가 그치면 젖은 거리가 순식간에 말라 비 온 흔적조차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오직 흠뻑 젖은 옷과 축축함만 남겨 당혹스러울 뿐이다.

 

나한테 그런 불안이 있다. 쏟아지는 비에 꼼짝없이 젖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속수무책(束手無策), 손 쓸 새 없이 당해버리는 불안과 초조 말이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걱정 없이 태평한 성격 덕분에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쉽게 잊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남기려고 하는 나에게도 지금 이야기하려는 불안은 정말 예외적이고 특이한 경우다.

 

그건 막연한 사고에 대한 불안이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내가 탄 버스나 차량이 다리 아래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무사히 탈출할 것인지 고민한다. 교통체증으로 막히거나 가다 서다 밀리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5분에서 길어야 10분 내에 한강 다리를 건널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정말 매번 지치지도 않고 사고가 날 경우를 전제하고 골똘히 살아날 방법을 되풀이해 생각한다. 물속에 가라앉아 깊은 강바닥에 수장되기 전에 탈출 상황을 그리듯이 상상하면서 유리창은 어떻게 깨고 나갈지 등등 탈출 방법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한다. 다리를 완전히 건너야만 그런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체 언제부터 이 불안이 시작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고등학생 때 겪었던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였을까? 당시에 나 역시 성수대교 근처 여고에 다녔고 매일 한강 다리를 건너 등하교를 했다. 때문에 사고 후에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야 했고 그때마다 매번 기억을 상기시켜 트라우마가 남았던 걸 수도.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빠른 경제 성장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사건 사고가 많았고 현재도 부실공사나 관리 소홀, 안전불감증 등으로 여전히 대형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월호 침몰과 이태원 참사 같은 납득할 수 없는 대형 참사는 나와 같은 세대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불안한 상상이 언제 시작됐는진 몰라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선명한 나의 불안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뉴스나 미디어, 영화 등에서 보고 들은 것들 때문에 더 구체화 됐을지 모른다. 현실과 영화 속 장면들이 뒤섞여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내가 탄 차량에 문제가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다리 아래로 추락해 물속에 빠질 것이라는 불안을 생생히 느낀다. 매번, 예외 없이 말이다.

 

다리를 건너는 그 잠깐 동안 영화 장면들과도 오버랩되어 상상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고 순간과 창틈에서 밀려들어 오는 물, 아우성치며 히스테리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 등이 생중계하듯 실감 나게 펼쳐진다. 그 순간 패닉에 빠지지 않고 물속에 가라앉는 버스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차근차근해야행동들에 대해 점검해 나간다. 다치거나 충격에 빠진 사람들이 히스테리를 부리며 막무가내로 빠져나가려 해도 수압차로 밀려들어오는 물살이 세서 빠져나올 없다. 오히려 당황한 사람들이 쇼크에 빠지고 아우성치다가 위험해질 있으므로 차량에 물이 때까지 기대리면서 사람들과 협력해 최대한 빠르게 순서대로 안전하게 탈출해야 한다. 그때 난 무얼 해내야 할지 상상하는 거다. 그래서 창문을 깰 수 있는 손망치의 위치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탈출로 확보 및 방법들을 대비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상상 속에서 탈출하기도 전에 한강 다리를 지나가게 된다. 아무 일 없이 다리 건너편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불안과 망상은 일시에 사라진다. 다행이다. 내 불안과 상상이 실현되지 않고 망상으로 끝나서.

 

한강 다리를 건너는 매 순간 자동 재생되는, 추락해 물속에 가라앉는 버스를 탈출해야 한다는 걱정과 불안은 대체 언제까지 나를 긴장시키고 두려움에 움츠러들게 할 건인지.

 

다시 생각해 봐도 청소년기에 겪었던 '성수대교 붕괴'사고처럼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난 '재난과 참사'가 결정적이었으리라. 이후 인재로 인한 참사들이 반복되었기에 '안전'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콘크리트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공고히 굳어버린 게 아닐까.

 

정말 무서운 건 잊을만하면,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나는 현실이다. 나의 불안이 끝나거나 해결되는 순간이 오긴 할까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적어도 사고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시작한 대비책과 무수한 시뮬레이션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여주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불안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진심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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